1. 서 론
고려시대에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르렀던 제지기술을 바탕으로 조선전기에는 닥 이외의 다양한 재료를 혼용하여 종이를 제작하는 시도들이 일어나는데 특히 인쇄를 위한 책지에서 재료를 혼용한 사례가 문헌기록과 현존 유물에서 다수 확인되고 있다.1,2,3)
이 중 ‘고정지(藁精紙)’는 볏짚, 귀리짚, 보릿짚 등의 초본류 섬유를 닥 혹은 뽕나무 등의 인피섬유와 혼용하여 초지한 종이로 옛 문헌기록과 현존 유물을 통해 특히 조선전기에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현존하는 유물 사례를 살펴보면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동국정운 권1, 6』(1448)의 경우 섬유분석 결과 책지에 초본류 섬유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육안관찰 시 흰색 입자가 종이 전반에서 관찰되고 있다. 이를 현미경 관찰과 X선 형광분석으로 동정한 결과 광물의 결정형이 확인되었고, 규소(Si)가 검출되었다. 이를 통해 ‘백토(kaolinite, Al2O3·2SiO2·2H2O)’를 전료(塡料)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전료를 사용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성종실록에 지장(紙匠) 박비가 중국 북경에 가서 조지법을 배운 기록이 있는데 주본지(奏本紙)의 재료는 마(麻), 대나무이고, 책지의 재료로는 마와 대나무에 볏짚을 섞어 제조하고, 주본지로 사용하는 종이에는 볏짚 조금 섞고, 약 1천장에 분(粉) 1근의 비율로 화합하여 제지하면 빛깔이 희어서 좋다는 기록이 있다.
‘問造冊紙則 竹筍如牛角時, 刈取連皮, 寸寸截之, 稻稭亦如右截之, 相雜灑水, 和石灰, 置水桶, 經五六日 熟蒸, 盛布帒, 洗凈淘去灰, 爛搗復盛布帒, 更洗凈撈出, 和淸水造之.問造奏本紙則 稻稭小許雜之, 約一千丈用粉一斤和造, 則色白而好.’
중국의 경우 예부터 지면(紙面)을 평활하고, 하얗고, 불투명하게 하려고 종이 제작 시 백아, 석고, 활석, 석회, 도토(陶土) 등의 가루를 섞어 제지하는 기법이 있는데 이를 가전법(加塡法)이라 하였다. 일본의 경우 니간사합지(泥間似合紙), 백토지(宇陀紙)에 이를 활용하였으며 유럽의 종이는 특히 인쇄적성과 지면의 평활도와 양면인쇄를 견디는 불투명도를 추구하기 위해 종이에 전료를 첨가하였다. 백토, 탄산칼슘, 활석이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이산화티탄, 황산아연, 황산칼슘, 아황산칼슘, 황산바륨, 규조토 등도 전료로 사용하고 있다.4)
일부 연구에서는 현존 유물의 조사 · 분석을 통해 초지 단계에서 전료를 혼입하여 종이를 제작하였거나 도공 시 표면의 사이즈제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5)
이에 본 논고에서는 닥섬유에 초본류 섬유와 전료를 혼입하여 초지하는 제지방법을 유추해보고, 재현 제작된 닥지(楮紙), 고정지, 고정백토지(고정+백토혼입지)의 물성과 인쇄적성을 비교 평가하여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고, 후속연구를 위한 실증적인 자료를 축적하고자 한다.
2. 재료 및 방법
옛 문헌과 선행연구를 반영하여 볏짚과 닥의 적정한 배합비율을 선정하고, 여기에 백토를 혼입하여 고정지를 재현,제작하였다. 완성된 닥지, 고정지와 고정+백토 혼입지의 특성을 인쇄적성의 측면에서 비교 분석하고, 고인쇄법 중 금속활자 인출을 적용하여 인출된 먹의 인쇄적성을 평가하며 종이의 특성과 인쇄적성 간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규명하는 실험계획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특히 고인쇄법으로 인출한 먹의 인쇄적성을 평가할 수 있는 표준시험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인출본의 고해상도 사진촬영을 진행한 뒤 대량의 수치 데이터 처리 프로그래밍 언어인 Python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종이에 착색된 먹의 면적 비율과 종이별 편차를 분석, 수치화하는 방법으로 인쇄적성을 평가하였다.
2.1 공시재료
본 실험에서 사용한 재료와 기기의 사양은 Table 1에 나타냈다. 종이 시편 제작에 사용한 재료 중 백닥, 잿물(고춧대), 황촉규는 모두 2023년 경북 문경 지역의 ‘M전통한지’에서 재배, 가공한 것이고, 볏짚은 일품벼 개량종으로 2022년 경북 문경지역에서 재배, 수확한 것을 사용하였다. 백토는 경남 진주산을 사용하였다.
Table 1.
인출에 사용한 금속활자판은 임인호 금속활자장이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권하(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卷下)』(1377)의 39면을 1:1 비율로 활자 주조 및 조판한 복제본을 사용하였다.
고해상도 촬영은 일정한 환경에서 동일한 값으로 세팅 후 진행하였으며 색의 균일한 보정을 위하여 Adobe Photoshop을 사용하여 256단계 gray scale로 변환 후 글자 크기에 맞춰 가로 · 세로 300 pixel 내외로 크롭하여 추출하였다.
인쇄적성 평가에 사용한 PC사양은 CPU 라이젠 5800H, GPU는 RTX 3060, RAM은 32GB이며 IDE(Integrated Development Environment)는 Visual Studio Code 1.9이었다.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썬(Python) 버전은 Python 3.10, 파이썬 라이브러리 정보의 이미지 처리는 PIL(Pillow), 데이터 시각화(그래프 생성)는 Matplotlib, 데이터 처리(이미지의 숫자화) 는 Numpy를 활용하였다.
2.2 실험방법
2.2.1 문헌과 현존 유물 조사
닥과 이 외 기타섬유를 혼용하여 제작한 기록 중 세종실록 65권, 세종 16년(1434) 7월 17일 2번째 기사는 『자치통감』을 인쇄할 종이를 각 처에 나누어 만들게 하는데 볏짚(篙節), 밀 · 보릿짚(麰麥節), 대껍질(竹皮), 삼대(麻骨) 등의 지료 5분(分)에 닥 1분을 섞어서 만들면, 종이의 힘이 조금 강할 뿐만 아니라 책을 인출하기에 적합하고, 닥의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기록3)이 있어 이를 닥과 볏짚의 배합 비율 선정에 적용하고자 하였다.
『자치통감』은 기록뿐 아니라 실제 유물도 남아있는데 1434년(세종 16년) 편찬에 착수하여 1436년(세종 18년)에 완료된 초주갑인자 금속활자본으로 총 294권 중 현재 일부가 남아 각 기관에 산재되어 있다. 이중 Fig. 1과 같이 국가유산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보물 『자치통감 권131~135, 246~250』5)의 고해상도 사진파일을 확대하여 보면 실제 닥과 이외의 섬유를 혼용하여 초지했을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재현제작 시 문헌기록을 참고하여 전건(前乾) 지료 대비 닥 1: 볏짚 5 의 배합비율로 초지하고자 하였으나 초본류와 같은 단섬유(短纖維)가 장섬유보다 많을 경우 흘림뜨기 시 섬유가 발 위에 잘 올라가지 않아 두께가 잘 쌓이지 않고, 한 지통에서 처음 뜬 종이와 마지막 뜬 종이의 닥과 고정의 함유 편차가 심하여 일정한 조건이 요구되는 이번 실험에서는 1:5의 배합비율이 적합하지 않았다.
또, 백토 혼입 시 종이의 강도가 더 약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인출 공정을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강도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판단 하에 선행연구6,7)를 참고하여 닥 1: 볏짚 3 으로 절충하여 초지를 진행하였다.
현존 유물 중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동국정운 권1, 6』(1448)의 책지는 Fig. 2와 같고, 종이 섬유의 C염색액 정색반응 사진은 Fig. 3과 같다. 섬유분석 시 고정지임을 확인하였고 아래 Fig. 4와 같이 종이 내부에 흰색 광물성 입자가 관찰되어 이를 동정한 결과 ‘Si’ 임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초지 시 전료의 혼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정과 백토를 혼입하여 초지한 종이의 특성과 인쇄적성에 관한 데이터를 확보하고자 Table 2의 『동국정운 권1, 6』책지의 물성정보를 기준으로 하여 백토를 첨가한 고정지를 재현, 제작하였다.
Table 2.
2.2.2 종이 제작
종이는 저지와 고정지, 고정+백토 혼입지 3종류로 각 7장씩 제작하였다. 제작은 경상북도 무형유산 김춘호 전승교육사와 협업하여 진행하였다.
고정지의 제작과정 사진은 Fig. 5에 나타냈다. 재료의 전처리는 특히 볏짚의 성분 중 리그닌, 규산과 같은 비섬유소 물질을 제거, 피브릴화 촉진과 백색도 향상을 목적으로 진행하였다. 볏짚을 작두로 1 cm 정도 잘게 자른 뒤 물을 잠길 정도로 넣고 60분 간격으로 물을 새로 갈아주며 180분간 100°C로 가열하였다. 지료의 양은 마른상태 기준 저지는 닥 466.5 g, 고정지와 고정+백토 혼입지의 3:1 비율 대비 양은 볏짚 350 g, 닥 116.5 g로 계량하여 소분하였다.
증해는 고춧대를 불완전 연소시켜 얻은 재를 열수 추출하여 만든 pH 10.5~pH 11 이하의 잿물에 백닥 2 kg를 넣었는데 이때 액비는 1:20으로 하였다. 100°C로 120분간 증해 후 30분간 뜸을 들인 다음 2회 세척하였다. 볏짚 700 g은 잿물과의 액비 1:20으로 300분간 증해하는데 역시 비섬유소의 효과적인 제거와 피브릴화를 위해 60분 간격으로 잿물을 갈아주어 pH를 10.5~11로 유지하였다.
고해는 닥섬유의 경우 닥돌 위에 올려 닥메로 두들기는 타고해 방법으로 30분씩 총 3회 진행하였고, 볏짚은 쇠절구와 쇠공이를 사용하여 30분씩 총 3회 타고해하였다.
해리는 지통에 지료를 넣기 전에 칼비터에서 10분씩 총 2회 진행하여 섬유가 잘 풀어지도록 전처리 하였고, 볏짚은 물에 풀었다가 고운 망을 씌운 체에 받쳐 거르는 과정을 2회 반복하였다.
지통(가로, 세로, 높이 각각 110 cm×79 cm×20 cm)에 물을 78L 정도를 채운 뒤 지료를 넣고 풀대질을 하였다. 3종의 종이를 제작하였으므로 제작 조건이 달라질 때마다 지통의 물과 지료를 새로 갈아주었다. 백토는 전건 지료대비 5% (23.3g)를 혼입하였는데 이는 서양의 종이 제지 시 백토의 첨가량이 펄프 양 대비 5~40% 인 것을 참고하여 설정하였다.8)
초지는 2L의 황촉규 점액을 넣고, 풀대질을 한 뒤 외발뜨기 (흘림뜨기)로 진행하였다.
종이 크기는 43 cm×40 cm 이고, 『동국정운 권1, 6』책지 중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는 평량 30.0~40.0 g/m2 범위 내에서 홑지를 제작하였다.
물질 횟수는 닥지는 약 14~15물, 고정지는 약 28~29물, 고정+백토 혼입지는 약 24~25물로 진행하였다. 초지 후 인출을 고려하여 종이 표면의 요철을 최소하고자 철판 건조를 진행하였다.
2.2.3 활자 인출과 이미지 촬영
초지가 완료된 종이에 활자 인출을 진행한 후 고해상도 이미지 촬영을 진행하였으며, 활자 인출과정 사진은 Fig. 6에 나타냈다.
3종의 종이 각각 동일한 금속활자판을 7장씩 인출하여 종이 1종류 당 7장의 동일한 인쇄본을 제작하였다. 최종 인출한 종이의 이름과 번호는 Table 3에 나타냈다.
Table 3.
현존하는 조선 전기 인쇄본을 살펴보면 금속활자와 목활자본이 존재하는데 목활자의 경우 먹과 수분이 가해지면 목활자 내에서 수축, 팽창 정도의 차가 발생하여 인출이 균일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금속활자 인쇄를 채택하였다.
인출 방법은 활자판에 바르는 먹의 양과 솔질 횟수, 누르고, 문지르는 힘을 매회 동일하게 정량화할 수 없기 때문에 약 20년 인출 경력의 국가무형유산 금속활자장 유미숙 이수자와 협업하여 최대한 균일하게 인출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인출과정은 먼저 활자판을 정돈한 뒤 붓으로 유연먹을 활자면에 바른 뒤 솔로 먹이 고인 부분을 고르게 펴주었다. 본 종이 인출에 앞서 여러 번의 시험 인출을 진행하여 본 인쇄에서 먹이 균일하게 착색될 수 있도록 활자판을 길들이는 과정을 거쳤다. 이때 작업을 연속적으로 진행해야 균일한 인쇄질이 확보되므로 이어서 인출 할 종이면을 활자판에 맞춰 놓고 머리카락을 뭉쳐서 만든 ‘인체’로 활자판에 붙이듯이 누르며 문지른 뒤 인출이 완료되면 종이를 떼어내었다.
인출한 종이는 동일한 조도와 카메라 간 거리, 촬영 위치를 설정하여 고해상도 촬영을 진행하였다. 카메라 설정은 ISO감도 100, 조리개는 F16, 노출시간은 1/125로 하였고, 촬영한 이미지의 크기는 너비 5472 pixel, 높이 3648 pixel 해상도는 300 DPI로 균일하게 고정하였다.
2.2.4 종이의 특성과 인쇄적성 분석
종이 분석은 물리적 특성 및 광학적, 기계적, 화학적, 형태학적 특성 분석으로 나눠 진행하였다. 각 실험에 적용한 표준 시험 방법은 Table 4에 나타냈다.
Table 4.
분석 시편으로 사용한 종이는 닥지, 고정지, 고정+백토 혼입지 모두 ID No. 6, 7이며 Kappa값 측정은 3종의 종이를 뜨고 남은 종이 섬유를 종류별로 수습하고, 탈수하여 사용하였다. 현미경 관찰 외 분석은 한지산업지원센터 연구개발실에 의뢰하여 진행하였다.
기본 물성 중 평량은 KS M ISO 536, 밀도와 두께는 KS M ISO 5341, 산성도는 KS M ISO 6588-1의 표준방법에 준하였다.
광학적 특성 중 백색도는 KS M ISO 2470 -2, 불투명도는 KS M ISO 2471의 표준방법에 준하여 측정하였다.
기계적 특성 중 내절도는 KS M ISO 5626, 인장강도는 KS M ISO 1924-3, 인열강도는 KS M ISO 1974, 거칠기/평활도는 KS M ISO 8791-2의 표준방법에 준하였다.
화학적 특성 중 섬유의 잔류 리그닌 함량을 추정하기 위한 Kappa값 측정은 JIS P 8211 표준방법으로 진행하였다.
형태학적 특성은 현미경 관찰을 통해 확인하였는데 기기는 DG-3X, Scalar Portable microscope, ×100, ×200 렌즈를 사용하였다.
인쇄적성 분석 방법은 고인쇄법에 대한 표준시험방법이 없어 인출된 종이의 이미지 데이터를 활용하여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썬(Python)과 데이터 분석 라이브러리를 적용하여 먹이 착색된 면적의 비율을 분석 및 정량화하여 비교, 분석하였다.
과정을 간략히 정리하면, 제작한 종이 1종류 당 5장의 동일 인쇄본을 촬영한 이미지 데이터를 균일한 색상으로 보정한 뒤 인출 전체면의 먹부분 착색도를 1차 분석하였다. 총 15개의 전체면 촬영 이미지를 분석하여 먹이 뭉치거나 덜 찍혀 발생한 인쇄오류에 따른 편차를 고려하여 면적율 중 최대, 최소값을 가지는 이미지 데이터는 제외하였다. 각 종이 별로 3개의 이미지를 분석 대상으로 설정한 뒤 먹의 착색도와 글자의 복잡도를 고려하여 비교적 균일하게 인출된 5개의 글자를 선별하여 전체 이미지에서 크롭하여 실험용 데이터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이 글자를 파이썬의 Pillow라이브러리를 이용해 256단계의 Gray scale로 변환하여, 변환된 수치를 Numpy라이브러리를 이용해 배열화하였다. 수치로 배열화된 이미지를 Matplotlib 라이브러리의 기능을 이용해 도표화하여 수치를 시각화하여 분석에 참조하였다.
3. 결과 및 고찰
3.1 종이의 특성 분석
종이의 특성 분석 결과는 Table 5에 나타냈다. 기본 물성 분석에 적용된 닥지와 고정지, 고정+백토 혼입지의 평량에서 편차가 발생하여 기본 물성 비교는 비교 대상을 고정지와 고정+백토 혼입지로 한정하였다. 고정지는 밀도 0.35 g/cm3, 두께110 µm이고, 고정+백토 혼입지는 밀도 0.42 g/cm3, 두께 92.3 µm로 측정되었는데 고정+백토 혼입지의 밀도가 고정지보다 높으나 두께가 얇은 이유는 백토가 전료로써 종이 섬유 사이의 미세한 공극을 메우고, 무게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Table 5.
광학적 특성의 경우 백색도는 닥지 50.6%, 고정지 52.3%, 고정+백토 혼입지 52.4%, 불투명도는 닥지 89.4%, 고정지 90.7%, 고정+백토 혼입지 92.9%로 미세한 차이이긴 하나 닥지, 고정지, 고정+백토 혼입지의 순으로 갈수록 백색도와 불투명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평균 섬유장이 1.4 mm내외인 단섬유 볏짚과 전료 백토가 섬유장이 평균 8.7 mm내외9)인 닥섬유가 얽혀있는 섬유 사이의 공극을 메워주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물리적 특성에서는 내절도, 인장강도, 인열강도 모두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닥지 순으로 강도가 저하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내절도와 인열강도에서 고정지의 강도가 닥지에 비해 현저히 감소하는 현상을 보였다. 내절도는 닥지 대비 발촉방향에서 44%, 발끈방향에서 63%의 강도 저하를 보였고, 인열강도는 발촉방향에서 49%, 발끈방향에서 60%의 강도 저하를 보였다.
거치름도/ 평활도는 건조 시 표면에서 닥지,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순으로 거치름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면(裏面)의 경우는 닥지, 고정지, 고정+백토 혼입지 순으로 거치름도가 높았다.
그리고 3종의 종이 모두 초지 시 이면(裏面)이 표면보다 거치름도가 높게 측정되었다.
리그닌 함량을 추정할 수 있는 Kappa No.는 닥지 18.1, 고정지 21.6, 고정+백토 혼입지 25.1로 고정지와 고정+백토 혼입지의 리그닌 함량이 닥지에 비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미경으로 종이 섬유의 결합 상태와 먹의 착색 상태를 관찰하였다. 현미경 확대 관찰 사진은 Fig. 7에 나타냈다. 닥지는 장섬유가 얽혀서 다층을 이루고 있고, 섬유 간의 공극이 관찰되는데 고정지와 고정+백토 혼입지는 미세 섬유화가 안된 미황색의 볏짚 섬유가 곳곳에서 관찰되고, 볏짚의 단섬유가 공극을 메우고 있어 공극으로 인한 요철이 어느정도 완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정+백토 혼입지에서는 백토입자가 섬유 간 공극을 메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먹의 착색 상태는 닥지는 지합으로 인해 먹의 착색면이 균일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정+백토 혼입지의 경우 인출된 먹의 면적 안에서 비교적 일정하고 균일한 먹색을 띠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3.2 인쇄적성 평가
Fig. 8은 3종의 종이를 각 5장씩 동일한 활자판에 인출한 이미지 데이터를 전체 면적 대비 먹이 착색된 면적을 백분율로 계산하여 표로 만든 것이다. 전체 종이의 면적 대비 온전히 인출된 먹 글자의 면적은 약 5.2% 이내로 닥지에서 먹 부분의 최대 면적율은 5.15%, 최소는 3.69%이고, 고정지에서 먹 부분의 최대 면적율은 4.96%, 최소는 3.57%, 고정+백토 혼입지에서 먹 부분의 최대 면적율은 4.16%, 최소는 3.7%로 분석되었다. 특히 먹 부분의 최대 면적율은 글자 획의 교차지점에서 발생한 먹의 고임이나 번짐 등의 영향을 받아 수치가 상승 할 수 있으므로 최대, 최소 면적율은 인출불량으로 간주하고 제외시킨 뒤 중간 값을 가진 3장을 비교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분석결과 먹의 착색도가 높은 것은 닥지,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순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각 종이 별 인출 편차가 적은 종류는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닥지 순으로 확인되었다. 역시 단섬유와 전료의 혼입 영향인 것으로 추정된다.
Fig. 9는 획의 교차점이 적고, 대체로 균일하게 인출된 ‘인(人)’ 자의 종이 별 먹 부분의 착색도를 비교한 그래프이고, Fig. 10은 인(人)’ 자의 종이 별 먹의 착색도 평균과 최고/ 최저 착색도의 편차를 확인한 그래프다.
Table 6은 분석 대상으로 정한 ‘인(人)’을 포함한 5글자 ‘운(雲)’, ‘설(舌)’, ‘지(智)’, ‘화(和)’ 각 장의 착색도를 백분율로 표현한 표이고, Table 7은 5글자의 지종별 착색도 평균과 최고, 최저값의 편차를 수치화 한 표이다. 착색도는 ‘지(智)’를 제외한 4개 글자에서 닥지,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순으로 높게 측정되었다. 최고, 최저 착색율의 편차가 적은 순은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닥지 순으로 확인되었다.
Table 6.
4. 결 론
조선전기 고정지를 재현, 제작하여 종이 특성 및 인쇄적성을 분석한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현존 유물과 문헌기록, 선행연구를 참고하여 고정지와 고정+백토 혼입지를 제작하였는데 전건 대비 닥과 볏짚의 비율을 1:3으로 하여 백토를 5% 첨가하여 흘림뜨기로 제작하였다.
2. 먼저 현존 유물과 본 연구에서 재현, 제작한 종이의 유사도를 비교하여 보면 『동국정운 권1, 6』책지의 촉진(觸診) 및 육안관찰 조사 시 종이에 부여된 중국 선지와 같은 유연함 과 부드러움이 재현, 제작 된 종이에서는 다소 느껴지지 않았다. 자연열화로 인해 얻어지는 변, 퇴색과 부드러움일 가능성도 있겠으나 원인은 볏짚 가공 시 비섬유소의 제거를 위한 숙성, 담금 등의 공정과 백토의 첨가 비율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공정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3. 고정+백토 혼입지의 밀도가 고정지보다 높으나 두께가 얇은 것으로 측정되었는데 백토가 전료로써 종이 섬유 사이의 미세한 공극을 메우고 있기 때문에 무게와 두께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4. 백색도와 불투명도는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닥지 순으로 높았다. 이는 평균 섬유장이 1.4 mm 내외인 단섬유 볏짚과 전료 백토가 섬유 사이의 공극을 메워주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5. 물리적 특성에서는 내절도, 인장강도, 인열강도 모두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닥지 순으로 갈수록 강도가 저하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내절도와 인열강도에서 고정지의 강도가 닥지에 비해 현저히 저하되었는데 단섬유인 볏짚과 닥섬유의 혼용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6. 거치름도/ 평활도는 표면은 닥지,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순, 이면(裏面)은 닥지, 고정지, 고정+백토 혼입지 순으로 거칠기가 높았다. 그리고 3종의 종이 모두 이면(裏面)이 표면보다 거칠었다. 이는 초지 시 첫 ‘물질 (발 위에 종이층을 형성하기 위해 발틀을 상하, 좌우로 흔드는 공정)’과 초반 물질에서 장섬유인 닥섬유가 발에 먼저 올라간 뒤 이후에 섬유 사이 공극을 볏짚 섬유가 메우기 때문에 종이 양면의 섬유 조성에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 요인 중 하나로 추정된다.
7. 리그닌 함량을 추정할 수 있는 Kappa No.는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닥지 순으로 높았다.
8. 현미경으로 형태학적 특성을 살펴보면 닥지는 장섬유가 다층적으로 얽혀있어 섬유 간의 공극이 관찰되는데 고정지와 고정+백토 혼입지는 미세 섬유화가 안된 미황색의 볏짚 섬유가 관찰되고, 볏짚의 단섬유가 공극을 메우고, 고정+백토 혼입지는 백토 입자가 공극을 한번 더 메우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먹의 착색 상태는 닥지는 지합으로 인해 먹의 농담이 균일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고, 고정+백토 혼입지의 경우 인출된 먹의 면적 안에서 비교적 일정하고 균일한 먹색을 띠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역시 볏짚 섬유와 백토가 공극을 메워 표면의 평활도가 상승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9. 먹의 착색율을 측정한 결과 인쇄적성은 닥지,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순으로 우수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최고, 최저 착색율의 편차가 적은 순은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닥지 순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전료로 사용된 백토가 균질한 바탕을 조성하여 인출한 먹 글자의 농담 편차가 크지 않고, 전반적으로 균일한 인쇄질을 얻는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수치로 확인한 결과이다.
고정지와 고정+백토 혼입지를 제작한 결과 종이의 백색도나 불투명도는 상승되나 비섬유소 함량 증가로 인해 인장강도나 인열강도, 내절도는 강도 저하를 보였으며 평활도는 닥지에 비해 고정지, 고정+백토 혼입지가 높았다. 인쇄적성은 닥지,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순으로 우수하였다.
최고/ 최저 먹의 착색율 편차가 가장 적은 순은 고정+백토 혼입지, 고정지, 닥지 순으로 균일한 인쇄상태를 가지는데 이는 백토와 고정의 혼입에 의해 공극이 메워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조선전기 당시 지장(紙匠)들은 다량의 책지 수급으로 인해 닥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대체재로 닥과 초본섬유를 혼용한 고정지를 제작하였다. 이는 재료적 한계 안에서 불투명도와 백색도, 평활도 등의 인쇄적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투영된 결과물임을 본 연구를 통해 일부 유추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