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론
종이 제조 기술 전파 경로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종이를 서사 재료로 하여 출간물을 제작한 역사는 종이 발명국인 중국 다음으로 길 것이다.
서기 105년 중국 후한시대 채륜에 의해 발명된 서사 재료 수준의 종이는 낡은 천, 낡은 어망, 나무껍질 등을 이용해 제조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에는 어망이나 천 등을 짜는 재료로 마(麻), 즉 삼이 사용되었는데, 쓰임새가 다 된 낡은 것들을 섬유화하여 종이를 만들었다고 한다[1]. 우리나라의 경우 정확한 종이 제조 시기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후한과 국경을 접한 지리적 접근성으로 미루어 양국 간의 교류 과정 속에서 중국의 발명 시기로부터 오래지 않아 종이 제조 기술이 우리나라로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따라서, 종이 제조 기술 도입 초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중국과 유사한 재료를 사용해 종이가 생산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종이 유물들은 8세기 경의 것들로서 대부분 닥나무 인피섬유(이하 닥섬유)로 제조된 것이다[2]. 이로 미뤄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8세기 이전부터 마 섬유가 아닌 닥섬유가 주요 종이 원료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종이 제조 기술은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전파되었으며, 또한 중국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과 유럽 등지로 전파되어 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과정 속에 각 지역에서는 자연스럽게 그 풍토에 잘 자라고 구하기 쉬운 섬유 원료로 종이를 제조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시대에 따라 새로운 섬유 원료를 발굴하여 종이 원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영토가 넓은 기후대에 걸쳐 있는 중국에서는 마, 닥나무, 대나무, 청단나무, 볏짚[1] 등의 다양한 식물이 주요 종이 원료로 사용되어 왔으며 일본 또한 우리나라보다 넓은 기후대에 자리하여 닥나무, 산닥나무, 삼지닥나무[3] 등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주요 종이 원료는 닥섬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도 닥섬유 이외에 여러 가지 식물 섬유를 부원료의 형태로 사용한 종이 유물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부터 국가에서 닥나무 식재를 독려했다는 기록과 종이 공납으로 인한 백성들의 노고를 줄여주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닥섬유 사용량이 많았던 것으로 추론된다[4]. 조선 전기인 1400년대에는 종이 수요가 급증했는데, 그 주요 원인은 국가가 주도한 대량의 책 인출 사업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책지(冊紙) 소비였다[5]. 그 결과는 닥섬유 공급 부족으로 이어졌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닥섬유와 함께 다양한 식물 섬유들을 증량제의 형태로 혼합해 책지를 제조하기도 하였다[6]. 그리고 볏짚이나 그 유사 종의 섬유가 포함되면 고정지(藁精紙), 버드나무 섬유가 포함되면 유목지(柳木紙), 마 섬유가 포함되면 마지(麻紙)라 칭하였다[7]. 또한, 국가 주도로 외국 식물을 도입하여 종이 원료의 다양화를 꾀하기도 하였는데, 왜저(倭楮)라고 칭했던 산닥나무를 일본으로부터 들여와 식재와 관리를 주도하기도 했으며 이를 원료로 제조한 종이를 왜지(倭紙) 또는 왜저지(倭楮紙)라고 불렀다[8]. 현재는 일본 표기 한자를 그대로 가져와 안피지(雁皮紙)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식물 섬유를 종이 원료로 사용하면서 수십 종의 식물 이름이 붙은 종이가 생겨나게 되었다[7].
이처럼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종이 제조 원료도 다변화했는데, 그 변화의 양상을 분석하는 것은 과거의 종이 사용 및 출판 문화는 물론 전통 종이인 한지를 보다 더 상세히 이해할 수 있는 학술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고문헌에 사용된 종이 원료 분석을 통해 문헌 출간 당시의 종이 제조 기술과 지류 문화 발굴에 필요한 단서 제공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분석 작업은 고문헌에 대한 형태서지학(physical bibliography) 연구와 유물 복원에 필요한 기초 정보 획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종이 원료 분석법으로는 현미경 관찰을 통해 직접적으로 종이를 형성하고 있는 섬유 종류를 판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현미경 이미지분석을 통해 종이 원료를 밝혀 보고해 오고 있는데, 그들 중 Park [9]은 여러 종이 원료 식물체 섬유들과 우리나라 고문헌 33점에 사용된 종이 원료 섬유를 비교 분석하여 보고하였다. Okawa [10]는 신라시대 및 일본 지류 유물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과거의 종이 재료와 제지 기술을 분석하였다. Ilvessalo-Pfäffli [11]는 목재, 초본식물, 인피섬유 등을 망라한 종이 제조용 식물 섬유를 광범위하고 세세하게 분석하였다. 그 외에도 다수의 우리나라의 고문헌 관련 식물 섬유 연구들이 수행되어 왔다[12,13,14,15].
본 연구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활자본 및 목판본 고문헌 책지 원료를 밝히고 시대별 출판용 종이 특성 분석을 통해 한지 분야와 서지학 분야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자 수행되었다. 이를 위해, 예부터 종이 원료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진 식물체 섬유와 이를 사용해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현대 시대의 한지 등에 대한 현미경 이미지를 대조군으로 하여 고문헌 책지에 사용된 종이 원료 섬유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2. 재료 및 방법
2.1 분석 시료
2.1.1 원료 식물체 섬유
목본 식물로서는 닥나무(Broussonetia × kazinoki Siebold), 꾸지나무(Broussonetia papyrifera (L.) L'Hér. ex Vent.), 산닥나무(Wikstroemia trichotoma (Thunb.) Makino), 버드나무(Salix pierotii Miq.) 등 4종, 초본 식물로서는 삼(Cannabis sativa L.), 모시풀(Boehmeria nivea (L.) Gaudich.), 벼(Oryza sativa L.), 갈대(Phragmites australis (Cav.) Trin. ex Steud.), 억새(Miscanthus sinensis var. purpurascens (Andersson) Matsum.), 보리(Hordeum vulgare) 등 6종의 인피섬유(bast fibers) 및 초본섬유(grass fibers)가 분석 시료로 사용되었다. 이들 중 닥나무와 산닥나무는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 월아연구시험림, 버드나무, 볏짚, 갈대, 억새, 보리는 경남 진주 지역, 꾸지나무는 경남 고성 지역, 모시풀은 경남 사천 지역에서 채취하였고 삼은 전남 보성 지역에서 구입하였다. 상기 시료 중 닥나무와 꾸지나무는 유전적 근연성이 높은 종들로서 Lim 등[16]에 의해 동정을 거친 개체들을 사용하였다. 또한 상기 산닥나무는 경남 남해 화방사의 산닥나무 자생지에서 채집한 종자를 기반으로 2009년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 월아연구시험림에 조성된 군락에서 채취한 개체였다. 버드나무류 중에서는 버드나무를 분석 시료로 삼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역에 가장 흔하게 자생하는 버드나무 종으로서 과거에 주변에서 가장 흔히 구할 수 있었을 것으로 유추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국가표준식물목록」상 삼은 대마(大麻)의 다른 이름이고 모시풀은 저마(苧麻)를 말한다.
섬유 분석용 시료 수는 위의 식물체 섬유 10종, 닥섬유와 각각의 나머지 섬유 1종씩 같은 비율로 혼합한 시료 9종 등 총 19종이다. 혼합 시료는 한지의 주원료인 닥섬유와 기타 섬유가 섞인 원료로 제작된 고문헌 책지를 구성하는 혼합 섬유 분석을 위한 대조군으로 제작되었다.
2.1.2 전통기법으로 현대에 제작된 종이
식물체 섬유만을 현미경으로 분석한 경우와 종이로 제작되었을 때의 차이 유무 등을 관찰하고 고문헌 책지에 사용된 한지 원료 분석용 기초 자료 확보를 위해, 원료가 정확히 밝혀진 국내 제조 한지와 일본산 종이 등에 대한 현미경 구조를 분석하였다.
2.1.2.1 국내 제조 한지
경남 의령 ‘ㅅ’한지 공방에서 제작된 닥지([楮紙, 저지], 2019년), 전북 전주 ‘ㅈ’한지 공방에서 제작된 마지(麻紙, 2024년)를 분석 시료로 사용하였다. 이들은 혼합 섬유 없이 각각 닥나무와 삼의 인피섬유로만 제작된 것이다.
2.1.2.2 일본 제조 종이
2011년 출간된 일본 출판 서적인 ‘필휴 고전적 고문서 료지사전(必携 古典籍 古文書 料紙事典)[17]’에 별책부록으로 첨부된 섬유판정용 안피지(雁皮紙[산닥나무 종이]), 저마지(苧麻紙[모시풀 종이]), 죽지(竹紙) 견본을 분석 시료로 사용하였다. 이들 종이는 모두 2006년에 제조되었으며 각각 단일 종류의 섬유 원료로 만들어졌다.
2.1.3 고문헌 책지 시료
본 연구의 종이 원료 섬유 분석에 사용된 고문헌 목록은 Table 1과 같다. 이들 고문헌은 한국전적문화재연구소에서 수집하여 책 제목, 출판 연도, 활자체, 활자 종류 등의 서지학적 분석을 수행하였다.
Table 1.
List of ancient books for fiber analysis
Table 1에 포함된 목판 인쇄 고문헌은 대부분 필서한 내용을 판각한 것이기 때문에 특정한 활자체가 보이지는 않았으며, 금속활자본 인쇄물 중 일부(시료 40, 42, 43번)는 2개의 활자체를 사용해 인출한 경우도 있고 시료 99번과 같이 다른 물성을 지닌 목활자와 금속활자를 같이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2.2 시료 처리
2.2.1 원료 식물체 섬유화
전통한지 제작에 있어서, 종이뜨기 전까지의 개략적 원료 준비 공정은 원료 채취, 무지(증기 찌기) 및 박피, 백피 제조, 잿물 삶기, 고해 등의 순이다. 본 실험에 사용된 닥나무, 꾸지나무, 산닥나무, 버드나무, 삼, 모시풀은 상기 공정에 따라 섬유화 하였으며, 벼과 초본섬유 식물인 벼, 갈대, 억새, 보리는 별도의 섬유 분리 과정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채취 후 잿물 삶기와 고해 과정만을 거쳤다. 본 실험 공정 중 잿물 삶기에 사용된 잿물은 참나무재를 뜨거운 물로 추출하여 제조되었으며, pH는 12.6이었다. 섬유 고해는 수타식으로 수행되었다.
2.2.2 시료의 해리 및 염색
현미경 관찰을 통한 종이 및 식물체 섬유 원료 분석을 위해 시료를 섬유 상태로 해리하였다. 해리 작업은 시료를 Franklin 시약(30% H2O2:Glacial acetic acid = 1:1 v/v)에 넣고 80°C에서 24시간 처리하여 수행되었다.
섬유 염색액 제조는 ISO 9184-4에 명시된 Graff “C” stain 제조법을 따랐다. 염색은 현미경 관찰 직전에 슬라이드글라스 위에 놓인 해리 상태의 섬유에 염색액을 가해 수행하였다.
2.3 현미경 분석
2.3.1 섬유 형태 및 폭
프레파라트로 준비된 시료를 광학 현미경(Model DMi8 automated, Leica Microsystems GmbH, Germany)을 이용하여 섬유 형태 및 폭 등을 분석하였다. 섬유 폭은 형태가 유사한 종 간의 비교를 위해 측정되었으며, 각 시료 당 500개 섬유의 폭을 측정하여 구한 평균치를 그 값으로 하였다.
3. 결과 및 고찰
3.1 현미경 분석 결과
3.1.1 원료 식물체 섬유
3.1.1.1 개별 식물체 섬유
Graff “C” 염색약으로 처리한 10개 식물체 섬유에 대한 현미경 촬영 결과는 Tables 2, 3, 4와 같이 나타났다. 닥나무, 꾸지나무, 삼, 모시풀 섬유는 주로 적갈색 계통으로 염색되었으며 산닥나무, 볏짚, 갈대, 억새, 보리는 청색 또는 청회색 계통으로 염색되었는데, 이는 JIS P 8120의 섬유별 Graff “C” 염색액 정색표의 내용과 부합되었다. 버드나무는 녹황색으로 염색되었다.
닥나무, 꾸지나무 섬유 표면에는 횡문이 있으며 투명막이 있는 섬유와 투명막이 벗겨진 섬유들을 같이 볼 수 있었다(Table 2). 미성숙 인피섬유와 섬유에서 분리된 투명막은 옅은 청색으로 나타났다. 이들 투명막은 섬유의 고해와 해리 과정 중의 물리화학적 처리에 의해 섬유로부터 탈락되거나 손상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들의 인피섬유 500개에 대한 평균 섬유폭을 측정한 결과, 닥섬유는 15.1 µm (표준편차 4.6 µm)였고 꾸지나무는 19.3 µm (표준편차 6.4 µm)로 나타났다.
Table 2.
Microscopic images of fibers from B. × kazinoki and B. papyrifera
| Species | Magnification ratio | |
| 50× | 100× | |
| B. × kazinoki | ![]() | ![]() |
| B. papyrifera | ![]() | ![]() |
한편, 예전에는 닥나무와 꾸지나무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했을 것으로 추론된다. 이들은 식물분류학적으로 매우 가까운 종이고 전문가가 아닌 이상 구별하기 힘들 만큼 유사한 수형과 잎의 형태를 지녔으며, 인피섬유 또한 유사한 특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1527년 초간된 책자로서, 한자의 뜻을 한글로 풀이한 어린이용 사전격인 「훈몽자회(訓蒙字會)」의 ‘수목(樹木)’편에 닥나무와 꾸지나무를 설명한 부분이 있다. Fig. 1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디지털장서각에서 제공한 훈몽자회 이미지로서, 1914년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제작한 영인본의 이미지이다[18]. 여기에서 닥나무를 지칭하는 저(楮)에 대한 한글풀이는‘닥뎌(닥나무 저)’이었고 꾸지나무를 말하는 구(構)는 ‘닥구(닥나무 구)’로 표기되어 이들 두 수종 모두를 닥나무로 취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구는 일명 ‘곡(穀)’이라고도 한다는 한자 설명이 추가로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본 논고의 고문헌 종이 섬유 분석을 수행한 부분에서는 이들을 구분하지 않고 닥나무로 통일해 부르기로 한다.
산닥나무 섬유는 전체적으로 청색으로 염색되었으며 섬유 가닥의 중간 부분 일부만 넓게 나타나는 등 폭이 일정하지 않고 횡문이 옅게 보이는 특성을 보인다(Table 3). 버드나무 인피섬유는 고해를 거쳤음에도 흑록색에 가까운 후벽세포가 붙어 있는 상태의 황록색 다발의 형태로 나타났다.
Table 3.
Microscopic images of fibers from W. trichotoma and S. pierotii
| Species | Magnification ratio | |
| 50× | 100× | |
| W. trichotoma | ![]() | ![]() |
| S. pierotii | ![]() | ![]() |
한편, 삼과 모시풀 섬유는 옅거나 짙은 갈색으로 나타났으며 횡문, 섬유왜곡, 종축문이 있고 닥섬유보다 종축문이 더 선명하고 많았다. 미성숙 세포 등은 투명한 옅은 갈색으로 나타났으며 분리된 투명막은 관찰되지 않았다(Table 4). 섬유 500개에 대한 평균 폭은 삼 25.3 µm (표준편차 9.8 µm), 모시풀 61.0 µm (표준편차 21.8 µm)로 나타나 닥섬유에 비해 현저히 두꺼웠다. 특히 모시풀은 Table 4의 백배율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고해 과정 중 생겨날 수 있는 섬유 피브릴화가 타 식물의 섬유보다 더 잘 일어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Table 4.
Microscopic images of fibers from C. sativa and B. nivea
| Species | Magnification ratio | |
| 50× | 100× | |
| C. sativa | ![]() | ![]() |
| B. nivea | ![]() | ![]() |
볏짚, 갈대, 억새, 보릿짚 섬유의 현미경 이미지에서 이들 모두는 끝이 뾰족하면서 닥나무, 산닥나무의 인피섬유나 마류(麻類) 섬유보다 짧은 섬유, 벽공이 있는 도관요소, 톱니 모양의 표피세포와 규산체 및 기공으로 이뤄진 표피세포, 유세포 등이 관찰되었다(Table 5). 보릿짚의 경우 타 시료보다 주머니 모양의 유세포가 많고 큰 것으로 관찰되었다. 이들 네 개 식물 각각의 500개 섬유에 대한 평균 섬유폭 측정 결과, 볏짚은 9.1 µm (표준편차 2.0 µm), 갈대는 10.9 µm (표준편차 2.7 µm), 억새는 13.0 µm (표준편차 3.9 µm), 보릿짚은 15.9 µm (표준편차 4.5 µm)의 순으로 나타났다.
Table 5.
Microscopic images of fibers from O. sativa, P. australis, M. sinensis, and H. vulgare
| Species | Magnification ratio | |
| 50× | 100× | |
| O. sativa | ![]() | ![]() |
| P. australis | ![]() | ![]() |
| M. sinensis | ![]() | ![]() |
| H. vulgare | ![]() | ![]() |
위의 섬유별 형태 특성은 Okawa [10], Ilvessalo-Pfäffli [11], Tsalagkas 등[19] 관찰 결과와 일치하였다.
3.1.1.2 혼합 식물체 섬유
혼합된 식물 섬유로 제작된 한지의 섬유 분석 시 대조구로 사용하기 위해, 닥섬유와 닥섬유를 제외한 상기 9개의 식물체 섬유 각각을 혼합한 시료에 대한 현미경 이미지는 Table 6와 같다. 닥과 꾸지나무 섬유가 혼합된 섬유 이미지에서는 두 섬유를 구분해 내기 어렵게 나타났으나 그 외의 섬유 혼합 식물체 이미지에서는 모두 각각의 개별 섬유 특성이 함께 나타났다.
Table 6.
Microscopic images of the 9 mixed fibers with B. × kazinoki
| Fiber type | Magnification ratio | Fiber type | Magnification ratio | ||
| 50× | 100× | 50× | 100× | ||
| A | ![]() | ![]() | F | ![]() | ![]() |
| B | ![]() | ![]() | G | ![]() | ![]() |
| C | ![]() | ![]() | H | ![]() | ![]() |
| D | ![]() | ![]() | I | ![]() | ![]() |
| E | ![]() | ![]() | - | ||
Note: (A) B. × kazinoki and B. papyrifera; (B) B. × kazinoki and W. trichotoma; (C) B. × kazinoki and S. pierotii; (D) B. × kazinoki and C. sativa; (E) B. × kazinoki and B. nivea; (F) B. × kazinoki and O. sativa; (G) B. × kazinoki and P. australis; (H) B. × kazinoki and M. sinensis; (I) B. × kazinoki and H. vulgare.
3.1.2 전통기법으로 현대에 제작된 종이
종이에서 채취한 섬유의 현미경 이미지는 Table 7과 같다. 이는 원료 식물체 섬유에 나타난 현미경 이미지와 종이로 제작된 후의 섬유에 대한 현미경 이미지 간의 차이 유무 등을 비교 분석하기 위해 촬영된 것이다. 그 결과, 닥나무, 산닥나무, 삼, 모시풀 인피섬유로 제작한 종이를 구성하는 섬유 이미지는 Tables 2, 3, 4의 식물체 섬유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났다. 한편, 대나무 섬유로 제작된 죽지의 경우에는 원료 형태의 식물체 섬유를 구할 수 없어 종이에서 채취한 섬유만을 분석하였는데 Table 5의 볏과 식물 섬유의 경우와 같이 청색으로 염색되었다. 하지만 대나무 섬유에서는 볏과 식물에서 볼 수 있는 톱니 모양의 상피세포와 규산체는 관찰되지 않았고, 볏과 식물에서는 볼 수 없는 길이 대비 폭이 유난히 넓은 도관 조직이 관찰되었다. 이 또한 Okawa [10], Ilvessalo-Pfäffli [11]의 연구 결과와 같다.
Table 7.
Microscopic images of fibers in the traditional paper made in Korea and Japan
| Fiber type | Fibers in the traditional paper made in Korea | Fiber type | Fibers in the traditional paper made in Japan | ||
| Magnification ratio | Magnification ratio | ||||
| 50× | 100× | 50× | 100× | ||
| A | ![]() | ![]() | C | ![]() | ![]() |
| B | ![]() | ![]() | D | ![]() | ![]() |
| - | E | ![]() | ![]() | ||
3.1.3 고문헌 시료
고문헌 책지 시료의 섬유 분석 결과는 Table 8과 같다.
Table 8.
Microscopic images of fibers from the ancient books listed in Table 1
Note: Specimen numbers in the table stand for the numbers in Table 1.
Table 8의 이미지들에 나타난 것과 같이, 본 연구에 사용된 99종의 고문헌 책지 시료에 대한 Graff “C” 염색액 처리에 있어서 81종은 적갈색 내지 암적갈색 섬유 가닥과 회청색 투명막 보유 특성을 보였다. 이는 Table 2의 이미지들에서 보이는 섬유 특성으로서 이들이 닥섬유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머지 18개 종 중 21번 시료는 Table 3의 경우와 같이, 섬유가 밝은 청색 한 가지로 염색되었고 섬유에 횡문이 존재하며 중간이 부분적으로 두껍게 나타나는 등 전형적인 산닥나무 섬유의 특징을 보여 왜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조선왕조실록에도 다수의 기록이 존재하는데, 세종실록 38권(1427년) 11월 3일 2번째 기사에는 “내고(內庫)의 왜지(倭紙) 9백 59첩(貼)을 내어 주자소에 명하여 「강목통감(綱目通鑑)」을 인쇄하게 하였다”라고 기술된 부분이 있다. 한편, 세종실록 49권(1430년) 8월 29일 3번째 기사에는 대마도(對馬島)에 사람을 보내어, 왜저[산닥나무]를 구해오도록 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세종실록 65권(1434년) 8월 3일 5번째 기사와 84권(1439년) 1월 13일 6번째 기사, 세조실록 25권(1461년) 8월 20일 1번째 기사와 29권(1462년) 11월 12일 2번째 기사에는 산닥나무 심기와 관리를 국가 차원에서 행했다는 내용들이 기재되어 있다. 이러한 일련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1427년의 왜지는 일본에서 제작된 일본 종이가 세종에게 바쳐져 보관하던 것으로 유추되고 1430년 이후에는 왜저를 일본으로부터 들여와 식재하고 자체 수확한 종이 원료로 사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시대 기록에 의하면 산닥나무 섬유를 포함하는 종이는 순왜지(純倭紙)와 교왜지(交倭紙)로 나뉘는데, 산닥나무 섬유만으로 제작된 종이를 순왜지라 하고 산닥나무와 다른 섬유를 혼합해 제작한 종이를 교왜지라고 했다[5].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시료 21번은 1450년 출간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으로서 왜저지로 33부를 인출했다는 발문 내용과 본 연구의 현미경 분석 내용을 종합한 결과, 산닥나무 섬유로만 구성된 순왜지로 판명되었다. 시료 22는 1457년 간행된 ‘묘법연화경’인데 산닥나무 섬유에 볏짚 섬유가 포함되어 있는 교왜지였다. 28번은 15세기에 출간된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詳校正本慈悲道場懺法)’로서, 특이하게 산닥나무 섬유, 닥섬유, 볏짚 등 3가지 식물 섬유로 구성된 교왜지였다. 이처럼 산닥나무가 한지 원료로 사용된 예들이 간혹 있는데 많이 사용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위에 언급한대로, 세종조 때 산닥나무 종자를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이후 여러 지역에 식재하고 원료 생산에 노력했다는 기록이 여럿 있지만 그 성과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주요 원인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생태지리적 위치가 산닥나무의 생육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일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산닥나무가 자생한다고 알려진 지역은 강화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남부 해안 및 도서 지역 일부에 국한되어 있고 일본과 중국의 경우에도 따뜻한 남서부 또는 남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시료 2번에서는 섬유 표면에 횡문과 종축문이 관찰되었는데, Table 4의 경우에서와 같이 종축문이 닥섬유의 경우보다 더 많고 선명하게 나타났다. 특히 회청색 투명막이 거의 관찰되지 않아 삼 섬유로 제작된 종이로 판단된다.
시료 12, 13, 14, 16, 17, 23, 24, 25, 35, 39번은, Table 6의 Type F–I에서와 같이 모두 적갈색으로 염색된 닥섬유와 청색으로 염색된 상피세포 등을 포함한 볏짚류(이하 고정) 세포들이 혼합된 고정지였다. 이들 중 23번 시료는 정상적 형태를 지닌 닥섬유와 변형된 고정이 혼합된 것으로 나타났다. 변형된 고정 조직은 주머니 모양의 유조직과 톱니 모양 상피세포 조직 일부를 제외하고는 심하게 짓이겨진 상태였는데, 이는 심한 절구질 등 고도의 고해 공정을 거쳐 준비한 고정 섬유를 닥섬유와 혼합하여 종이를 제조한 결과로 판단되었으며 실험을 통해서도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Fig. 2는 보릿짚을 2.2 항에서와 같은 처리를 거친 후 고도의 수타 고해를 수행한 시료의 100배율 이미지로서, Table 8의 23번 시료에 보이는 것과 같이 짓이겨진 세포들과 손상되지 않은 섬유, 유세포, 상피세포 등이 같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시료 61번과 93번에서는 청색으로 염색된 짧은 섬유, 폭넓은 도관 조직 등의 전형적인 대나무 조직 이외의 다른 종류는 발견되지 않아 순수한 죽지로 밝혀졌다. 참고로 Table 7에서와 같이 대나무 섬유는 고정 섬유처럼 짙은 청색 또는 청회색으로 염색되기는 하지만, 고정에 나타나는 톱니 모양의 상피세포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이 둘 간의 구별은 어렵지 않다. 한편, 시료 7번은 대나무 조직인 짧은 청색 섬유, 폭넓은 도관 조직 세포들과 그들 사이로 듬성듬성 적갈색의 닥섬유가 관찰되어 닥섬유가 소량 섞인 혼합 죽지로 밝혀졌다.
시료 22번은 청색의 길고 섬유폭이 일정하지 않은 특징의 산닥나무 섬유와 고정의 특징인 톱니 모양 상피세포가 소량 혼합된 종이로 분석되었다. 시료 28과 46번은 특이하게 갈색 닥섬유, 청색의 산닥나무 섬유, 그리고 톱니 모양 상피세포, 규산체, 기공 세포 등의 표피세포를 포함한 고정 섬유 등 세 가지 식물 섬유가 혼합된 종이로 밝혀졌다. 여기에서도 고정 조직은 소량만 포함된 것으로 관찰되었다.
닥섬유 대체 섬유의 사용이 빈번해지기 시작한 것은 세종조 이후였는데, 그러한 정황이 조선왕조실록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세종실록 25권(1424년) 8월 2일 두 번째 기사에는 “고절(蒿節), 댓잎, 솔잎, 창포대 등을 원료로 한 네 가지 종류의 책지를 주자소(鑄字所)로 보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고절은 볏짚류를 의미하며[12] 주자소는 활자 주조와 인쇄를 관장했던 기관이다. 동권 11월 24일 두 번째 기사에는 “지조소에서 새로 제작한 고절지(蒿節紙) 2백 08첩(貼), 송엽지(松葉紙) 22첩을 바치니, 주자소에 내려 주었다”라고 기재되어 혼합 섬유 종이를 자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실록 65권(1434년) 7월 17일 2번째 기사에는 “...(중략) 고절과 모맥절[麰麥節; 밀·보릿짚], 대껍질[竹皮], 삼대[麻骨] 등은 준비하기가 쉬운 물건이므로, 이들 5분(分)에 닥 1분을 섞어서 만들면, 종이의 힘이 조금 강할 뿐만 아니라 책을 찍어내기에 적합하고, 닥 소비량도 많지 않을 것이다”라고 기재된 것으로 보아 기타 식물 섬유의 사용이 닥섬유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명시하고 있다. 문종실록 4권(1450년) 10월 10일 20번째 기사에는 “...(중략) 경상도에서 모절지(麰節紙), 유목지 각각 2천 권, 전라도에서 고정지, 유목지 각각 2천 권, 충청도에서 마골지(麻骨紙) 1천권, 강원도에서 유목지 1천 권으로 하고 (후략)”라고 하여 지역별 특산 혼합 섬유 한지 종류가 열거되어 있다. 단종실록 11권(1454년) 6월 21일 2번째 기사에는 “...(중략) 초절목피(草節木皮) 1근(斤), 닥 3냥(兩)을 섞어서 종이를 만들어도 또한 쓸 수 있으니, 청컨대 이제부터는 부득이 닥나무 종이를 써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 상시 쓰는 종이는 다 잡초지(雜草紙)를 사용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라는 내용으로 미루어 국가에서 혼합 원료 종이 사용을 강력히 추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1근은 600 g이고 3냥은 약 112.5 g이므로 기타 섬유와 닥섬유 혼합비는 세종조 때의 권장 내용과 같이 5:1이라 할 수 있다. 세조실록 13권(1458년) 7월 23일 1번째 기사에는 “...(중략) 처음에 잡초지를 쓰게 하니, 사람들이 많이 어렵게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마침내 폐단을 없애고 백성들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강제로 시행하고 해이하지 않게 하였다. (후략)”라고 기술되어 세조조 때는 혼합 원료 사용을 더 강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책지 시료 중 닥섬유 대체재나 혼합 재료로 제조된 책지의 대부분은 1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부 16세기부터 20세기 동안에 제조된 혼합 원료 책지들도 있었는데, 35번과 39번은 닥섬유와 고정이 섞인 고정지였고 46번은 닥섬유, 산닥나무 섬유, 고정 섬유 등 세 가지가 혼합된 종이었으며 61번과 93번은 대나무 섬유로 제조된 죽지였다.
4. 결 론
본 연구에 사용된 99종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고문헌 책지에 대한 현미경 분석 결과, 책지 제작에 사용되었던 주요 원료는 닥섬유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별로 책지 원료에 있어서 일부 변화 양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상기 책지 시료들의 제작 연대를 고려해 볼 때,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는 삼이 한지 원료로 사용된 소수의 예가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 닥섬유를 대체한 섬유로 한지 원료를 제조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15세기에는 강목속편(綱目續編), 사기(史記), 사서오경(四書五經), 성리대전(性理大全),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 자치통감(資治通鑑),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등 국가적인 대규모 책 인출 사업들이 자주 추진되었다[5]. 이때부터 책지 원료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으며 고정, 대나무, 산닥나무 섬유 등의 다양한 재료가 닥섬유 대체재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16세기 이후에도 간간이 혼합 재료로 제작된 책지가 발견되었지만 15세기에 비해 그 빈도수가 확연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정황상 15세기에 닥섬유 대체재가 많이 사용되었던 주요 동인은 막대한 책지 수요를 감당해 내기 위한 대안이었던 것으로 귀결된다.
한편, 위의 고문헌 제작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닥섬유 대체 책지 원료는 고정으로 나타났는데 주류는 볏짚이었고 간혹 보릿짚 등도 사용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더불어 고정이 단독 재료로 사용된 예는 발견되지 않았고, 모두 닥섬유 등과 혼합된 형태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책지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만큼의 범위에서 고정을 혼합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분석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나라의 책지 원료로서 닥섬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비교할 만한 것 없을 정도로 컸다. 이는 닥나무를 대체할 만한 자원이 많지 않았던 환경적 영향으로 생겨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선조들이 자원을 활용하고 새로운 원료를 찾아내어 더 많은 책지 원료를 조달하거나 더 좋은 품질의 책지를 제조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다양한 책지로 제작된 고문헌들과 그와 관련된 한지 제조 문화가 유산으로 남겨졌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